어홍선 노원구청년의사회장(왼쪽)이 마가레타 수녀에게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보건동우회 제공
마흔을 훌쩍 넘긴 경혜씨(가명)는 늘 '아빠'를 기다린다. 아빠가 마지막으로 다녀간 것이 "지난해 이맘때"였다며 올해 역시 "아빠가 보러올 것"이라고 말한다.

아빠가 경혜씨를 보러 왔던 그해 봄은 이후 서른번이나 경혜씨를 찾아왔지만 아빠는 한번도 오지 않았다. 경혜씨는 아빠가 부재했던 그 숫한 봄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혜숙씨(가명)는 매일 인형을 업고 다닌다. 요즘같이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혜숙씨는 봄기운을 주체못하고 인형을 아니, 아기를 업고 햇살을 마중 나간다. 포대기에 싸인 아이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아기가 잠들었는지를 확인하는 듯하다 가끔씩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를 들려준다.

아무도 혜숙씨에게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한다. 그저 혜숙씨가 정신을 놓아버린 일이 아기와 연관돼 있지 않을까 어림잡을 뿐이다.

서울올림픽 개최를 3년 앞둔 1985년 여름 경혜씨와 혜숙씨는 1천명의 여성 부랑인들과 여성부랑인 격리시설인 서울남부보호지도소로 '보호 조치'됐다. 올림픽을 앞두고 서울을 중심으로 전격실시된 정부의 부랑인 격리조치를 사람들은 '거리 청소'라고 불렀다.

성모영보수녀회는 거리청소를 당했던 여성 부랑인들을 지금의 영보자애원으로 데리고 왔다. 마가레타 수녀는 "수용 당시 20~40대 여성들이 벌써 40~60대가 됐지만 아직도 강제수용의 상처를 얘기한다"고 말했다.

스물살이 갓됐을 것 같은 영선씨(가명)는 '거리청소' 세대는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신지체가 있었던 영선씨는 뒤늦게 입소했다. 영보자애원 가족들에게 영선씨는 '애기'로 불린다.

4월이라지만 아침저녁으로 차가운 아스팔트길을 영선씨는 맨발로 걸어 나왔다. 영선씨의 주된 관심사는 그 나이 여자아이들이 다그렇듯 젊은 남자다. 하루 봉사를 위해 찾아 온 남성 봉사단들은 영선씨 뿐 아니라 수용돼 있는 경혜·혜숙씨의 육탄공세를 기꺼이 받아내야 한다.

처음에는 쳐다만 보다 다가와서 매달리고 끌어안고 친해졌다싶으면 얘기를 꺼내 놓는다.

   
유리창 닦기에 나선 봉사회원들@보건동우회 제공
보건복지부 보건직 주무관들이 주축이 된 '보건동우회'와 서울 노원구청년의사회·대한의사협회 직원봉사단이 18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서울시립영보자애원' 봉사활동에 나섰다. 봄을 맞아 먼지 낀 창틀을 씻고 이제 막 때를 입힌 잔디를 밟고 물을 줬다.

복지부 내 직원 봉사조직이었던 '보건사랑회'와 노원구청년의사회가 2006년 서울시립영보자애원에서 배수로 청소봉사를 한 이후 4년 만의 방문이다. 이번에는 보건사랑회의 봉사정신을 이어받은 '보건동우회'가 노원구청년의사회와 나섰다.

   
유만진 복지부 보건동우회장(왼쪽)과 어홍선 노원구청년의사회장이 봉사활동을 함께 지속하기로 결정했다.@최승원 기자
어홍선 노원구청년의사회장과 유만진 보건동우회장·서판숙 의협 직원봉사단장은 이번 영보자애원 봉사활동을 계기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서기로 했다. 보건사랑회와 노원구청년의사회, 의협 직원봉사단의 재기를 가장 반기는 것은 영보자애원의 마가레타 수녀다.

수녀와 사회복지사 30명이 600명의 가족을 돌보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도움이 늘 필요하다는 말이다. 문제는 복지부 내 보건직 공무원들과 의사들의 관심과 참여.

어홍선·유만진 회장은 "4년여간 끊어졌던 봉사활동을 이어가는 일이 쉽진 않지만 이번 영보자애원 봉사를 계기로 다시한번 불을 지피겠다"고 약속했다.

장현재 의협 의무이사와 백은자 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장·이상철 서울의대 교수(마취과)가 봉사활동을 함께 했다.

이영종·정대환·소상문·박흥석·양명헌·오윤희·조봉래·윤미라·김지은 등 복지부 보건동우회원과 김원석·김진호·박경희·양승주·오훈일·이동일·조문숙·조현호 등 노원구청년의사회원이 참여했다.

박승구·최승일 의협 직원 봉사단도 힘을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