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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에 실린 [나눔의 세상 몸소 실천하는 '백의천사''어비뇨기과'어홍선 원장]

작성자명관리자
조회수1180
등록일2009-01-14 오후 1:09:00

봉사란 무엇일까. 봉사의 사전적 의미는 ‘국가나 사회 또는 남을 위하여 자신을 돌보지 아니하고 힘을 바쳐 애씀’이다. 그러나 이보다는 ‘아무런 대가없이 자연스럽게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주는 행위’라는 표현이 조금 더 적절할 듯 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리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남에게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어주는 것. 아울러 자신의 행동에 대해 자랑하고 인정받으려는 행위를 배제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흔히들 ‘봉사’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마음의 봉사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어 비뇨기과’ 어홍선 원장(45)은 “저보다 더 많이 봉사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저를 찾아오셨어요?”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다. 그 첫마디가 얼마나 큰 대화의 무녀리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그와의 만남이 얼마나 보람되고 뜻깊은지를 암시한다. 현재 각종 의료 봉사단체에서 무료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그의 ‘나눔의 삶’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눔의 삶으로 부자 되는 방법 아시나요?"

지난 2002년 10월4일 우리나라 기독교 첫 무료병원인 다일천사병원(이하 천사병원)이 동대문구 전농동에 건립됐다. 그리고 천사병원에는 백의 천사들이 하나, 둘 의료봉사를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어 원장도 의료봉사를 자처한 전문의로 저녁마다 자신의 의료장비를 바리바리 싸들고 천사병원으로 향했다. 그 역시 다른 많은 의료진들처럼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도 또 누군가가 알아주기를 원하는 마음에서 의료봉사를 시작하지도 않았다. 단지 천사병원 개원과 함께 자신이 무언가 할 수 있다는 데에 그저 힘이 났을 뿐이었다.

어 원장은 비뇨기과 전문의로 의료봉사 부분에 있어서는 ‘비인기 분과’라는 것이 항상 마음에 걸렸다. 따라서 천사병원에서 의료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남들보다 더 큰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비뇨기과 전문의가 의료봉사를 나가서 할 수 있는 일은 극소수다. 어느 정도 의료 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솔직히 진료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천사병원과 노원구 청년의사회에서 무료 의료봉사를 하고 있는 그는 의과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의료봉사를 시작했으며 개원 이후 1996년도부터 이를 본격적으로 해왔다. 하지만 의료봉사를 하면서 그가 늘 아쉬웠던 부분이 바로 ‘비뇨기과 전문의’였던 것이다.

어 원장은 “병원 진료를 6시에 마치면 곧장 장비를 챙겨 천사병원으로 갔다. 전립선 수술부터, 방광에 호수를 꼽는 수술 등 웬만한 치료는 그곳에서 행했다”면서 “천사병원에서 시술이 어려운 환자는 따로 우리 병원에 데려와 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당시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에게 종합병원 수준의 장비가 있었다는 것도 의료봉사를 하는 데 절대적인 요소가 됐다. 또한 의료 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의료서비스’라는 점을 감안해 당시 천사병원은 종합병원 못지 않은 시설과 서비스가 이뤄졌던 것도 이러한 혁신적인 의료 서비스 제공을 가능하게 했다. 당시에만 해도 당직 의사가 상주했으며 원장이 병원 인근에 살아서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달려가는 등 역동적인 시스템으로 병원이 운영됐다.

하지만 지금은 치과와 안과 진료를 위주로 하며 외래 진료를 병행하는 등 시스템 자체가 이전과는 조금 달라졌다. “많은 젊고 뜻 있는 의사들이 지금은 천사병원을 떠났다. 그러나 의료 봉사를 할 수 있고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그들은 언제든 다시 돌아올 것이다.”

어 원장 역시 지금은 천사병원에서 그때만큼 많은 수술은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외래, 결석환자 위주로 1주일에 한번 특정 요일을 정해서 수술을 하는 정도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천사병원을 꾸준히 찾는 이유는 단 한가지. 의료 보호, 의료 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많은 소외된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나마 전해주기 위해서다.

“한번은 50대 조선족 남자가 방광암으로 병원을 찾은 적이 있다. 조선족 남자는 중국에서 자신이 방광암이라는 것을 알고 한국에 건너왔다고 했다. 당시 천사병원에서 암 수술까지 할 정도의 의료시설이 갖춰져 있었으므로 수술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수술 후에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진단서를 써 달라고 요청했다. 불법체류로 고국으로 쫓겨가지 않기 위해서 진단서가 필요하다면서…”

그때 어 원장은 그 남자의 현실이 안타까웠지만 딱히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암환자이면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린 그 남자의 현실의 벽은 크지만 도움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에 있다 보면 별의 별 환자들을 다 만난다. 각기 딱한 사정들을 안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다.